어렸을 적 소년 장기하(노래/기타/퍼커션/작?편곡)는 자신이 음악처럼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노래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역시 가수는 얼굴이지"라 생각하여 얼굴이 괜찮은 음악인들을 수소문하던 중 운 좋게도 실력마저 출중한 정중엽(베이스/코러스), 이민기(기타/코러스), 김현호(드럼/퍼커션/코러스)를 만나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하게 이름 모를 두 여인을 만나 "역시 가수에겐 율동이 필요해" 라는 깨달음을 얻고 삼고초려, 어렵사리 거물 섹시 코러스단 미미시스터즈(안무/코러스)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옛날 사운드의 아련하고 흥겨운 향취와 함께 독창적인 가사와 음률, 그리고 진지하면서도 화려한 안무를 특징으로 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은 데뷔 첫 해 '10회 쌈지싸운드페스티벌 숨은고수' 'EBS 스페이스 공감 9월의 헬로루키' 등에 선정되는 등,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1996년 유명 기획사 ‘분가분가’에서 2500:1의 경쟁률을 뚫고 차세대 아이돌 그룹을 위해 나잠 수, 덕우엉, 김덕호 3명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기획사의 의도대로 사회와 격리된 채 혹독한 댄스 연습 및 노래 연습에 몰두했으나, 1997년 IMF 외환 위기에 휘말려 기획사가 망하고 대표는 해외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후 8년, 도망 간 대표를 쫓아 세계 각지를 배회하던 그들은 중동의 모 지역에서 왕년에 디스코의 제왕으로 일컬어 진 무하마드 B. 마니를 만나 잊혀진 전설의 음악 아라비안 펑키 소울을 전수 받고 각각 압둘라 나잠, 무스타파 더거, 김덕호로 개명, ‘술탄 오브 더 디스코’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2006년 귀국한 그들은 쑥고개에서 절치부심 중 주류 음악계에 등을 돌리고 독립 음악계 최초의 립싱크 댄스 그룹으로 거듭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황색 터번과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이국적이면서도 박자감 있는 음악을 무장한 그들은 이후 댄스 플로어를 휩쓸며 군계일학의 풍운아로 우뚝 서고 있는 중이다.

3인조 그룹사운드 "치즈스테레오"-이동훈(노래/기타), 최영휴(베이스/코러스), 하승우(드럼). 2000년 처음 음악에 손을 댈 무렵만 해도 이들은 소위 '무허가 펍'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젊음을 소진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이들에게 찾아온 첫번째 계기는 "근육이라도 키우자"며 떠난 2006년의 멤버쉽 트레이닝(MT). 이 자리에서 이들은 술마시고 고기 많이 먹고 늦게 자고 담배 많이 피는 등의 무위한 행위를 일삼던 중 "청자를 단숨에 흔들어대지 못해서야 못해서야!"라며 득도에 버금가는 순간을 맞이, "오로지 기타! 베이스! 드럼!"을 주창하며 간결 명료한 댄서블 싸운드를 터득하게 되었다. 이후 색색이 줄무늬 티셔츠를 곱게 맞춰 입고 정돈된 포즈로 청자들을 맞이하곤 하는 이들은 "어지러운 오색의 조명 아래서 맛깔나는 리듬으로 플로어를 부산스레 달구기”를 특기로 삼아, 스스로 몸치라 자부하며 댄스의 세례를 단호하게 거부해 오던 부류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을 불어 넣어 플로어로 뛰쳐나가는 현상이 빈발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을 이루는 것은 팔할이 즉흥이다. 솔로곡을 만든 이기타장기하가 “아무래도 혼자 공연을 하는 건 좀 약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해서 목말라를 끌어들여 만든, 공연을 위한 일시적인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청년실업’이라는 이름도 “아무래도 팀 이름은 있어야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신문 가판대에 청년실업 어쩌구하는 기사가 있는 걸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붙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이할은 이들이 품고 있는 독자적인 정서이다. 얼핏 듣기에는 그저 개그일 뿐이지만, 듣고 돌아서서 몇 걸음 걷다 보면 뒷통수를 때리는 시니컬함이 배어있다. 장난 같지만 진지하고 쉽다 싶지만 어렵다. 겉으론 단순해 보이나 사실 속으로는 곪아 터지고 있는 요 근래 청춘들이 이들의 노래 중에 반응한 것도 결국 이러함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청년실업의 노래는 우리 세대의 구전가요가 되었다.


‘아마도이자람밴드’이자람(목소리, 기타)을 주축으로 이민기(기타, 얼굴마담2), 생선(드럼, 얼굴마담1), (드럼, 몸마담), 병성(천재베이스), 이향하(곰의 여곰, 퍼커션) 등이 모여 있는 포크록 밴드다. 2004년에 결성되어 5년 남짓한 짧지 않은 활동 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슬픈 노래’나 ‘비가 축축’ 같은 노래는 클럽 빵을 중심으로 한 독립음악판에 자주 드나든 사람에게는 꽤나 익숙한 편이다. 특히 실력 있는 판소리꾼이기도 한 이자람의 가창력은 이미 홍대 인근에 잘 알려져 있다. 이른바 보컬들이 질투하는 보컬리스트인 것. 본인들은 스스로를 독립음악판에서 가장 과대평가되었다며 평가절하하곤 하지만, 어쨌든 이미 적잖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밴드의 이름을 걸고 공식적으로 이뤄진 녹음은 빵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한 곡 밖에 없었다. 이자람 개인으로는 이미 ‘미인’ OST에 참여한 바 있지만 그것도 세션이었을 뿐, 자기가 만든 노래들은 여태껏 대중 앞에 내밀지 않았던 것이다. 주변 동료 뮤지션들이 “내가 도와줄 테니 제발 음반 좀 녹음하지 그래?”라며 끊임없이 권장해도 때로는 소심해서, 때로는 귀찮아서 거절하곤 돌아섰던 그들이 드디어 음반 《슬픈 노래》을 발매하게 되었다.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은 나약한 사나이들의 식어버린 청춘과 그로 인한 궁상에 치를 떨던 아티스트 조까를로스(노래, 기타)를 구심점으로 그의 의지에 동의하는 여러 음악인이 모여 있는 정열의 느와르 마초 밴드이다. 2005년 만들어져 여러 번 멤버의 순환을 겪은 끝에 현재는 조까를로스를 비롯 유미(타악기, 드럼), 후르츠김(멜로디언, 건반), 까르푸황(베이스), 김간지(타악기, 드럼, 랩)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야매 라틴 혹은 얼터너티브 라틴 음악을 근간으로 하는 그들의 음악은 현재는 “더 이상 라틴 음악이아닌 것 같다”는 조까를로스의 선언에 의해 변화의 시기에 놓여 있지만, 인생을 관통하는 기승전결확실한 이야기에 광폭하게 강렬하면서 동시에 처연할 정도로 구슬픈 모순적인 정서는 혼자 사는 여성 자취생을 중심으로 하는 관객층에 어필, 독립음악계에서는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러한 지지에 힘입어 케이블채널 Mnet의 『마담 B의 살롱』이나 MBC TV의 『Slow Talk 악어』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전파도 탔고 라디오나 신문에도 몇 번 나오긴 했으나 유명해지면 재미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조까를로스 이하 멤버들의 고질적인 심드렁함 탓에 널려 알려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마초가 죽어서 콧수염을 남기는 것을 보고 자신도 뭔가를 남겨야 하겠다는 조까를로스의 의지에 의해 음반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2009년 1월에 독립음반제작사 붕가붕가레코드와 손을 잡고 기존에 녹음했던 음원을 모아 EP 《악어떼》를 발매했고, 한정 생산 1000장이 2개월만에 매진, 될 것 같다는 판단 아래 6월 첫 정규 음반 《고질적 신파》를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군대 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들은 안 돼"라는 핑계로 뚜렷한 결정을 미뤄놓고 있던 권선욱(보컬, 기타)은 2008년 여름, 막 제대를 하고 나서 삶에 대한 고민에 본격적으로 맞딱뜨리게 된다. 과연 지금 이 세상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봤지만 결국에는 뒤로 엎어지나 앞으로 깨지나 삶은 비슷하게 지속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입대 전에 하던 음악을 계속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절친한 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김수열(드럼)을 찾아가 밴드를 하자고 제안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밴드가 시작되었고, 마이너스 에너지 일색인 자신들의 삶과 음악에 프러스 에너지가 가득 찬 이름이라도 붙여야 무슨 변화라도 일어날 것 같다는 언령신앙적 발상을 기초로 밴드 이름을 '아침(Achime)'으로 지었다. 이어서 데모 작업을 하는 녹음실에 자신의 몸 만한 베이스를 멘 채 꺾어신은 신발을 질질 끌고 찾아 온 가련한 첫 인상, 그리고 마치 세상을 다 내려놓은 듯한 연주할 때의 표정으로 어필한 박선영이 김수열의 후배라는 인연으로 베이시스트로 들어오게 됐다. 이렇게 3인조로 2008년 가을 세 곡의 데모를 제작하여 홍대 인근의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이후 마이스페이스 코리아의 클럽데이 오디션에 합격하는 등의 이력을 계속 이어 가던 중 "모두 거치니까 한 놈 정도는 깔끔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타 세션으로 활동하던 이상규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정식 멤버로 참여하여 현재와 같은 4인조의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 하여 2009년, 그들은 아무래도 음반을 내기 위해서는 회사를 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그들은 개중 가장 만만할 것 같은 붕가붕가레코드에 데모 음원을 보내기에 이른다. 종잡을 수 없는 그들의 음악에 반한 관계자들은 만장일치로 이들과 함께 음반 작업을 하기로 결정, 7월에 첫 음반이자 열 두 번째 수공업 소형 음반 《거짓말꽃》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데이지 데일

브로콜리 너마저

굴소년단

하도